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보르 슈케르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파일:external/d05e0815dfd38b9f2066182deb0826df37d0daf4a0066c726ca26e6beeada558.jpg]]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황금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現 U-20 월드컵] 우승의 핵심 멤버 중 한 명. 이 대회에서 6경기 6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1위는 7골)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올림픽 대표로 2경기 출전 하여 골은 기록 하지 못 했으며, 1990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5경기 3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유럽 최고의 축구 유망주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22세의 나이에 유고 대표팀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당시 대표팀 주전인 [[다르코 판체프]], [[즐라트코 부호비치]]가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서 경험을 쌓는 정도였다. 국가대표 커리어의 시작은 유고 내전의 시작으로 인해 모국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다. 모국인 크로아티아 소속으로 국가대표에 나서기 시작한 슈케르는 유고 내전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전체가 메이저 대회 출전 정지를 먹어 [[UEFA 유로 1992|유로 1992]],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크로아티아 국기를 달고 참가한 [[UEFA 유로 1996]]에서 크로아티아의 황금세대 멤버인 투톱 콤비 [[알렌 보크시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 윙어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라는 화려한 공격진의 리더로 4경기 3골을 넣으며 크로아티아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최대의 황금기인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조별리그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아깝게 패하긴 했지만 자메이카, 일본전에 1골씩 넣고 2승 1패로 16강에 안착한 후, 16강 루마니아전 결승골, 대회 최대 이변 중 하나인 8강 독일전에서 3번째 골로 독일을 3:0으로 대파하는 주역이 되었고, 4강전 프랑스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었지만, 하필 이날 [[인생게임]]을 한 [[릴리앙 튀랑]] 때문에 1:2로 역전패하고[* 이 날 튀랑은 슈케르의 선제골 상황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실점을 허용한 이후, 각성해서 자신의 A매치 142경기에서 넣은 단 두 골을 이 경기에서 몰아넣었다.], 3,4위전 네덜란드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정리해보면 슈케르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제외하곤 매경기 골을 때려 넣었고, 결국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7경기 6골로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1998년 월드컵 실버볼을 수상했다.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같은 해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는 등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리즈 시절]]을 지휘했다. 아쉽게도 1999년 부상 이후 노쇠화까지 겹쳐 기량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UEFA 유로 2000|유로 2000]]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비차 올리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